본문 바로가기

살아가는 이야기

비생산적인 낙서 -

커트 보네거트의 『갈라파고스』를 읽고 있다. 작년에 읽었던 『저 위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나봐』를 읽고 꽤나 감명을 받았기에 읽기 전부터 기대를 했었는데, 기대한 것 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다. 너무 얘기가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고, 이야기 전개가 좀 느리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저 위의 누군가가...』에서 보여줬던 인간 세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보노라면 감탄스러울 뿐이다. 보네거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세계의 불행 중 대부분은 너무 크고, 너무 발달한 인간의 두뇌 때문이 아닐까라고 우리에게 물어보고 있다. 물론 작가가 그런 점들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무릎을 딱 칠 만한 구절이 많다. 하지만 보네거트의 소설에서 그런 점을 발견한다는 것은 아마도 인간 세계의 불합리성에 대해 작가에게 씁쓸하게 동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쁘지만은 않다.

정확한 사실이 아닌 견해에 지나지 않는 것들 때문에 서로 치고 받고 싸우는 그런 행동들 역시 지나치게 발달한 뇌 때문이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어찌나 와닿던지;

인터넷 기사들에 달리는 많고 많은 쓸데없는 리플들 혹은 악플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커다란 두뇌를 가지고 이런 글을 쓰는 나 역시 일을 팽개쳐놓고 이렇게 비생산적인 낙서나 하고 있으니;


다윈은 갈라파고스를 변화시킨 게 아니었다. 그는 다만 갈라파고스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를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저 옛날 위대한 대뇌들의 시대에는 그저 견해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그토록 중시되었던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그저 견해에 지나지 않은 것들이 마치 확고한 증거처럼 사람들의 행위를 지배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한순간에 폐기되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갈라파고스는 한 순간엔 지옥이었다가 다음 순간 천국으로 뒤바뀔 수 있었고, 줄리우스 시저는 한 순간엔 위대한 정치가였다가 다음 순간 잔인한 도살자로 매도될 수 있었으며, 에콰도르 지폐는 한 순간엔 의식주와 교환되다가 다음 순간 새장 바닥의 깔개로 추락할 수 있었고, 우주는 한 순간엔 전능한 신의 창조물이었다가 다음 순간 느닷없는 대폭발의 산물로 돌변할 수 있었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만 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은 두뇌의 힘이 약화된 덕분에 이제 더 이상 그 도깨비 같은 견해라는 것 때문에 생업을 제쳐두고 이런저런 소리에 골몰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 커트 보네거트, 『갈라파고스』